옥수수 밭에서

한인환 2019-05-04 (토) 19:43 4개월전 284  

옥수수 밭에서

 

한인환

 

익명의 노인이 코레일 사장 앞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배고픈 젊은 시절, 열차를 무임승차했던 기억에 오랫동안 괴로웠다며 사죄하는 글과 함께 상당액의 돈을 보내왔다는 기사였다.

 모두들 못살던 시절에 흔한 일이 아니던가. 참외서리나 닭서리와 같이 어쩌면 하잘 것 없는 일이라 볼 수도 있는데, 무엇이 노인의 양심을 이렇게 아프게 찔러 왔을까?

 병역기피, 위장전입, 논문표절, 탈세 등 매번 고위직 인준 청문회 때마다 시끄럽다. 어떻게 공직을 맡아 봉사하겠다는 분들이 하나같이 이 모양인가. 이런 결격사유가  하나도 없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청렴하다고 칭송하기에 앞서 요즘 세상에 저런 외골수로 꽉 막힌 분이 어찌 국정을 맡아 융통성 있게 잘 처리할 수 있을까?’ 오히려 불안감마저 들 판이니, 내 맘에 뭍은 때도 보통은 넘는 것 같다.

저렇게 똑똑하고 유복한 분들이 자기 자식들은 하나같이 군대도 못 갈 정도로 약골이나 병신으로 키워놓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기도 하고.

 흥사단 투명사회본부의 조사에 의하면 10억이 생기면 1년쯤 감옥에 가도 좋다는 고교생이 44%에 달한다고 한다. 또 남의 물건을 주워 내가 가진다는 학생은 62%에 이른다고 하니, 물질 만능주의에 젖은 우리 개인과 사회의 병폐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이러한 시대에 이 노인은 곧 죽을병에 걸렸을까? 아니면 신심信心이 깊어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회개의 실천일까? 좌우간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뭐 새삼스레 아파할 필요가 있나 안타까운 마음까지 든다.

 

 나는 대학 3학년을 휴학하고 군에 입대했다. 춘천 보충대에서 꼬불꼬불 산길을 계속 북으로 달려 사단에 도착하고, 또 며칠 후 자대에 배치되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첩첩 산 중일뿐 부대 밖에는 겨우 서너 채 민가에서 가끔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자연의 한가로운 목가를 구가하기에는 나의 졸병생활은 너무나 바쁘고 고달팠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즈음 한참 교회 건축으로 힘든 목사님께 보낸 편지이다.

 

                                     목사님께

목사님, 그간 더운 일기에 건강은 어떠신지요?

저가 이 부대에 온 이후 몇 번 편지를 드리면서도 예배드리려 나간다는 말씀은 못했지요? 사실 한 번도 교회에 출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저번 주일까지 세 번째 교회에 다녀왔습니다.

양구읍에 있는 양구 교회입니다. 목사님은 박찬수 목사님으로 아주 젊은 분입니다. 약 두 시간 가량 걸어서 가는 것이 요즘 날씨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교회 갈 준비로 들뜬 마음이 되곤 합니다. 아직까지 바른 신앙의 자리에 서지 못했다고 고민했었는데 모르는 사이 믿음이 많이 자라고 있는 듯합니다.

저가 맡은 직책이 시간에 맞춰 무전 교신하는 것이라, 주일날 자리를 비우려면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어야 합니다. 일전에 소대장님이 소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청원 휴가를 두 사람 보내주겠다고 했을 때, 모두들 자기를 보내달라고 했지요. 그때 저는 잠자코 있었더니 소대장님이한 일병은 집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집에 가고야 싶지만 저보다 먼저 가야할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대답하니까역시 진짜 크리스천은 다르다고 칭찬하시며 대신 교회에는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던 겁니다.

역시 성도에게는 예배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지요? 설교를 들으며 졸기가 일수이면서도 주일날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예배 석에 앉았노라면 찬양대석이 건너보이며 찬양대까지 하고 싶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전에는 맡은 직분조차 귀찮아했는데 이제는 다시 직분을 맡으면 그저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 이만 줄입니다. 교회와 장로님, 온 성도님께서 평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새 성전에서 빨리 예배드려보고 싶습니다. 안녕하십시오.

19708H 올림

 

 편지에는 교회 가는데 두 시간쯤 걸린다고 썼는데, 실은 가는 데는 사단으로 부식을 수령하는 트럭을 타고 갔으므로 그렇게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11시 대예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걸어서 왔으므로 정말 두 시간쯤 걸렸다. 교회에서 점심이라도 주는 날은 한결 나았다. 그러나 점심이 없는 날 7,8월 땡볕에 터벅터벅 걸어서 부대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힘들었다.

 한참 허기져서 좀 쉬어갔으면 할 즈음에 길가에 옥수수 밭이 연이어 나타났다. 내 키보다도 더 큰 옥수수 대에는 팔뚝만한 옥수수가 달려 지천으로 늘려 있었다. 흑갈색 수염을 뽑고 껍질을 하나둘 벗겨 나가면 누런 옥수수 알이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내고는 싱긋 웃고 있었다.

 솔가리를 한줌 깔고 그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몇 개 이리저리 걸쳐놓고 불을 붙인다. 불이 붙으면 그 위에 옥수수를 껍질 채 올려놓는다. 옥수수를 뒤집어가며 껍질이 시꺼멓게 타도록 익힌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면 옥수수를 집어 들고 타다 남은 껍질과 재를 털어낸다.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옥수수 알을 후후 불어가며 한입 물어뜯는다. , 그 구수한 맛이란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시꺼먼 손으로 옥수수 알을 여남은 개 뜯어 한입에 털어 넣으면 왜 그렇게 맛이 있던지.

 옥수수 밭 속에서 큰 놈으로 옥수수 하나를 구워먹고 나설 때는 행복한 포만감으로 온 몸에서 새 힘이 솟구치고 다음 주일이 또 기다려지곤 했다.

 

 그러나 무임승차 노인의 기사를 떠올리며 잔잔한 감동에 젖어있을 때, 그 때 그 옥수수 밭에도 주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렇다. 그 넓은 옥수수 밭에다 옥수수를 하나하나 심은 농부가 있었다. 그 주인은 옥수수를 구워먹은 흔적을 보고 어느 불쌍한 졸병의 짓임을 눈치 챘을까? 아니면 도둑을 잡겠다고 한참 노리고나 있지 않았을까.

군복을 입혀 놓으면 사람이 아닌기라

 그러나 그게 변명거리가 될까?

성경을 읽기 위해 초를 훔쳤다.’고 하면 과연 면책이 될까?

 저 노인은 단 한 번의 무임승차에도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는데, 나는 어떤가. 적어도 불을 지필 라이터를 미리 준비하고는 여러 차례 남의 밭 옥수수를 구워 먹고 그 맛에 취해서 희희낙락하던 자가 아니던가. 그리곤 몇 십 년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지금은 소양호 속으로 수몰되고만 옥수수 밭에서 휘이잉, 휘이잉바람이 몰아쳐 온다. 바람결에 옥수수 잎들이 서로 부딪치며 소리친다. 바로 그 노인의 회한에 찬 쉰 소리다.

자네, 장로라며? 자네는 누구에게 편지를 띄울래누구에게 용서를 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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